상품 상세설명
가로 19.4 x 세로 31.4cm
半匡 16.3 x 24.3cm
10行20字,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
기효신서 [紀效新書]
1560년(嘉靖 39) 척계광이 절강현(浙江縣) 참장(參將)으로 있을 때 왜구(倭寇)를 소탕하기 위하여 편찬하였다. 권1 속오편(束伍編)으로부터 권18 치수병편(治水兵編)에 이르는 총 18권으로 이루어졌다. 당시 왜구는 주로 해안선을 따라 습지가 많은 중국의 절강 지방 등을 노략하였다. 이를 소탕하는 데에는 종래 북방 유목민족을 소탕하기 위하여 편제된 군제(軍制)와 무기 및 전술이 적합하지 않았다. 왜구의 기습적인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, 소부대의 운용과 접근전에 적합한 전술을 고안한 내용이 실려 있다.
이 병법을 절강지방에서 나왔다고 하여 절강병법(浙江兵法)이라고도 하는데, 이는 명확한 지휘편제와 연대책임을 강조하는 속오법(束伍法)을 채택하고, 조총(鳥銃) ·등패(藤牌) ·낭선(狼筅) ·장창(長槍) ·권법(拳法) 등 다양한 무기와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. 이 책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(선조 26) 1월 평양성전투 후였다. 선조는 명나라의 이여송(李如松)의 군대가 《기효신서》의 전법으로 왜군을 격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입수하여 그 전법을 연구하도록 하였다.
그 이후 《기효신서》의 속오법과 삼수기법(三手技法)에 따라 중앙군으로는 훈련도감(訓鍊都監), 지방군으로는 속오군(束伍軍)이 설립되었다. 인조반정 이후 설립된 어영청(御營廳) ·총융청(摠戎廳) ·수어청(守禦廳) ·금위영(禁衛營) 등 중앙군영들도 이에 따라 편제되었다. 조선 전기의 졸(卒) → 오(伍) → 대(隊) → 여(旅), 통(統) → 부(部) →위(衛)로 이어지는 부대편제는 폐지되고 대 →기(旗) → 초(哨) → 사(司) → 영(營)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부대편제가 채용되었다. 그러나 이러한 병법이 한국의 지형과 실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게 변용 응용하는 데 노력하였으며, 조총을 중시하면서 군대편제를 더욱 세분화 ·다양화하였다. 이렇게 발전시킨 것이 《무예도보통지(武藝圖譜通志)》 등의 병서이다. 이 책의 부대편제 방식은 1894년까지 계속되어오다가 갑오개혁으로 근대적인 군제가 도입되면서 폐지되었다.
[출처] 기효신서 [紀效新書 ] | 네이버 백과사전